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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제조업 위기의 교훈]③‘화(禍)’ 부른 닛산의 방심

  • 2017.12.08(금) 14:21

무자격자 투입해 품질검사…리콜, 출하중단 '일파만파'
가볍게 여겼다가 거센 후폭풍…비용압박 등 한몫 분석

일본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에어백 제조업체 타카타가 파산한 데 이어 고베제강과 도레이, 미쓰비시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품질조작 파문에 휩싸였다. 이뿐만 아니라 닛산, 스바루와 같은 유명 완성차 제조업체도 스캔들에 휘말려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 제조업체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이들 기업이 닥친 문제를 알아보고 시사점을 찾아본다. [편집자]

 

 

"위기는 촉매입니다. 닛산은 위기 위에 세워졌죠. 리더의 역할은 위기를 감지하고 재빠르게 대응하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난 9월29일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르노닛산자동차 본사. 지금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카를로스 곤(63) 닛산차 회장이 사내 임원 후보자를 대상으로 이 같은 내용의 강연을 시작했다.

카를로스 회장은 20조원 가까운 빚으로 도산 직전까지 내몰린 닛산을 도요타에 이은 '일본 자동차 메이커 넘버2'로 재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위기돌파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최고경영자로 평가받는다.

 

◇ 위기 강조한 날 '날벼락' 

카를로스 회장이 위기를 논하던 날, 아이러니하게도 닛산은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닛산이 자격미달 직원을 투입해 품질검사를 해온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성은 닛산에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감시 대상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시이 케이이치 일본 국토교통성 장관은 "소비자에게 불안을 안기고 제도의 근간을 흔들었다"며 닛산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같은 날 오후 닛산도 기자회견을 열고 자격미달 직원들이 검사 공정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뒤 닛산은 2014년 10월부터 2017년 9월 사이에 생산한 38개 차종, 116만대를 리콜한다고 밝혔다. 리콜비용만 250억엔(약 2400억원)에 달한다. 문제 공장의 국내 출하도 2주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 품질검사에 자격미달 직원 투입

특이한 점은 닛산의 출하정지 조치가 일본에 국한됐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면 내수용과 수출용 모두 출하를 중단해야 하는데 수출용 제품에는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이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독특한 품질관리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일본의 도로운송차량법 제75조는 자동차 제조사가 출고전 차량의 이상유무를 검사할 땐 정부 측 검사관에 상응한 기술요건을 갖추고 그 자격 요건에 합당한 자가 검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의 품질뿐 아니라 그 품질을 검사하는 직원의 자격까지 꼼꼼히 따지도록 한 것이다.

일본산 자동차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수십년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제도의 역할이 컸다. 한국은 물론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도 자동차 제조사 직원의 자격까지 규제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자격미달 직원을 투입한 것은 일본 내에서만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 닛산은 내수용만 출하정지 조치를 내리면 그만이었던 셈이다.

◇ 꼼꼼하지 못했던 경영진…"나도 몰랐다"

일본 내에선 이런 규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밀기계와 통계기술을 쓰면 얼마든지 불량품을 걸러낼 수 있는데 굳이 이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 제도는 운영하는 주체가 제각각이다. 기업이 정부 부처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사항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품질 검사안(案)이다. 일단 틀이 마련되면 그 안에서 자격을 어떻게 부여할지는 기업이 정한다. 시험제를 운영할 수도 있고 임의대로 지정할 수도 있다.

경영진으로선 누구를 투입할지는 현장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가볍게 볼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닛산 공장에서는 작업복에 배지를 달았는지 여부에 따라 자격자와 무자격자를 나눴다고 하니 이 제도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됐는지 짐작할 만하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은 "보고를 받기 전까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현장 판단으로 대리급 직원 선에서 무자격검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 카를로스 곤(사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은 비용절감과 이익창출을 강조해왔다.

 

◇ '카를로스식' 비용감축의 그림자

이번 품질 파문과 관련해 카를로스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999년 당시 경영위기에 빠진 닛산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부임해 이듬해 사장으로 취임한 카를로스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비용감축과 이익창출이었다.

특히 공장끼리 경쟁을 붙여 싼 비용을 써낸 곳에 생산물량을 할당하는 정책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돼있다. 각 공장은 인원을 대폭 줄였고 한정된 인원이 여러 공정에 투입된 결과 이번과 같은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닛산 근무자의 말을 빌려 "닛산차 주요 공장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이라는 주문이 있었고 이에 따라 품질검사 담당 직원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카를로스 회장은 그간 "위기가 생기면 리더의 활약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해왔다. 닛산 경영진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닛산은 지난달 8일 올해 예상 영업이익을 연초보다 5.8% 낮춘 6450억엔으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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